돈보스코 별인, 이 땅에… 유해를 모셔왔습니다. (1815년생 ~ 1888년 선종) (평화신문으로부터)

돌아가신 지 73년이 넘은 유해가 잠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 성인의 도움을 구하세요.그들은 항상 우리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돈·보스코·사레이시오회의 설립자인 성 요한·보스코의 생애와 영성,”불우 청소년을 위해서 내 마지막 숨까지 바친다..”사레시오회의 설립자인 성 요한·보스코(1815~1888다음 동보스코)는 청소년의 영혼의 구원에 혼신을 기울이고 세상은 그를 『 19세기의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교육자 』라고 부른다.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지 않았다.청소년, 특히 불우 청소년을 “놀이터”로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1815년 8월 16일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시 멱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돈·보스코는 가정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늘 밝고 명랑하였다.그는 시장에서 본 광대나 곡예사를 흉내내고 친구 사이에서 가수. 배우. 마술사로 통한 순탄 성정이었다.그의 어머니는 빈곤 속에서도 아이의 종교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그는 후에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신의 뜻을 받아들이고 기쁨과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돈·보스코는 1835년 신학교에 입학.6년 후의 1841년 토리노 교구에서 사제 품을 받는다.사제가 된 뒤 최초로 한 것은 소년원에 수감된 청소년들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당시 이탈리아는 공업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는 시골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모인 청소년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면서 쉽게 범죄에 빠졌다.교도소는 이런 젊은이가 있다.이런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 동·보스코는 뒷골목을 헤매다 전쟁 고아들과 공장의 어린 근로자들, 재소자들에 관심을 기울였다.돈·보스코는 그들을 위한 일요일 학교와 기숙사를 짓고 전문 학교와 기술 학교도 열었다학교에서는 신발 제작과 양재, 목공, 인쇄 및 제본 등을 가르쳤다.그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였다.돈·보스코는 “사랑은 오래 참다…모든 것을 믿어 주고 모든 것을 원하는 모든 것을 견딥니다”(1코린 13,4~7)라는 바울 사도의 말에 근거하고, 그저 따뜻한 사랑과 관심에서 청소년들을 만났다.청소년들은 돈·보스코의 각별한 사랑에 감동했고 점차 마음의 문을 열었다.인생의 무게에 지쳤던 그들은 돈·보스코의 사랑에 힘입어 마음 속에 숨겨진 열정과 희망, 사랑을 발견했다.돈·보스코는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체험을 나누기 위해서 1859년 사레시오회를 설립하고 1869년과 1871년에 교황청에서 수도회 인가와 회헌 인가를 받았다.1872년에는 사레시오 수도회를 1876년에는 사레시오 협력자회를 설립했다.청소년을 위해서 땀과 기도로만 일관한 일생이었다.1888년 1월 31일 새벽 73세의 동·보스코는 웃음을 띤 채 신의 품에 안겼다.그는 “제 아이들에게 천국에서 기다리라고 하세요”라는 말을 남겼다.돈·보스코는 1929년 때 옷, 1934년 4월에 때 이뤄졌다.스페인 정부는 1950년 청소년 교육의 선구자였던 그를 전국 상공 학교에 수호 성인으로 정하고 교황 비오 12세도 그를 “청소년의 아버지인 스승”이라고 불렀다.